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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고백

김영민 · 김영사 · 2024

과학을 혐오하는 최적의 방법은 과학을 욕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비과학적인 걸 늘어놓고 그걸 과학이라 하는 것이다. 삶을 혐오하는 최적의 방법은 삶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삶이라고 하는 것이다.


미얀마에 다녀왔다. 그곳 사람들(중 일부)은 이번 생이 망했으면 다음 생을 기다려보고, 이번 생의 문제는 지난 생의 업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어떤 품위가 발생하는 것 같았다.


비판적인 것과 시니컬한 것은 다르다. 얼마든지 삶을 비판적으로 사랑할 수 있다. 노예가 족쇄를 사랑하듯 삶을 사랑할 필요는 없다.


오늘날 뛰어난 예술은 술 퍼먹고 기행을 일삼는 이들에게서 나오기보다는, 명징한 정신을 유지하고 지적 정확함을 추구하는 자기 단련의 족속들에게서 나온다. 예술도 그러할진대, 학문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야수가 이미 공을 잡았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홈으로 뛰어야만 하는 주자는 얼마나 비극적인가?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는 자신의 아웃을 향해 달려야 한다. 야구 경기 중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결혼으로 한꺼번에 번식공동체, 대화공동체, 육아공동체, 일상공동체, 농담공동체, 생존공동체 그리고 스파링 파트너를 만들고자 한다. 그 많은 것이 한 방에 다 성공할 리 있겠는가.


“에콰도르의 수산시장에는 줄을 서서 생선을 구매하는 바다사자가 있어. 그곳에서는 워낙 자주 있는 일이라 생선 가게 아저씨들 역시 무심하게 바다사자 차례가 되면 생선을 잘라준대”라고 옛 친구가 그랬지. “이곳에서는 최대한 ‘살고 있는 척하다가’ 나중에 중남미의 해변에서 ‘살자’”라며.


동물 다큐멘터리에서, 혹자는 도덕의 무가치함을 보고, 혹자는 생명의 무가치함을 본다.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는 “내가 가진 것은 세계다. 커리어가 아니다”라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렇다. 그래서 학문과 예술을 향유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커리어로 환원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이 가꾸어온 세계와 더불어 살고 더불어 죽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