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에 대한 가장 간단하면서도 본질을 포착하는 설명은, 말로 토머스가 노래한 <자유롭게 너와 내가 되자>가 아닐까 싶다. 여자아이라면 의사건 변호사건 아메리카 원주민 추장이건 원하는 일은 무엇이건 자유롭게 하라. 남자아이라면, 그리고 그 아이가 가르치고 돌보는 일을 좋아하고 인형을 갖고 싶어 한다면 그것 역시 괜찮다. 페미니즘 개념은 우리 모두 어떤 재능이 있건 각자의 재능을 자유롭게 개발할 수 있어야 하고 인위적인 장애물 — 단연코 하늘이 내린 것이 아닌 인간이 만든 장애물—에 가로막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법은 사회를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사회의 경험이 법에 반영되는 것은 당연하다. 법이 사람들의 생활 방식에 관계없이 무미건조하게 논리적이라면, 그것은 성공적인 제도로 자리 잡지 못할 것이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우리 조상과 달리 기적적인 사건이 우리의 앞길을 열어줄 것 같지는 않다. 편견과 억압이라는 물을 빼내려고 할 때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수단 — 법률의 지혜, 제도의 품격, 이성적 사고, 공감적 배려 — 에 기대야 한다. 앞으로 계속 나아가고자 하는 항구적 자극으로서, 이 세상에서 영원히 추방해야 할 악에 대한 우리의 생생한 기억에도 또한 기대야 한다. 보다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기나긴 투쟁 속에서 우리의 기억은 가장 강력한 무기 가운데 하나다.
로 대 웨이드 사건 판결이 뒤집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한다 하더라도 많은 주가 예전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곧, 비행기나 기차를 타고 낙태가 합법인 주로 이동할 경제력이 있는 여성은 문제될 게 없다는 뜻이다. 연방의회나 주 의회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상관없다. 낙태술이 가능한 주들이 있고, 비용을 댈 수 있다면 어떤 여성이든 낙태술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판결이 뒤집힘으로써 영향을 받는 유일한 여성들은 비용을 마련할 수 없는 여성들뿐이다.
누가 가정과 일을 모두 가지는가? 남자? 여자?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 나는 그랬던 것 같다. 가정과 일을 모두 가지긴 했지만 한순간에 가능했던 일은 아니다. 마티가 젊은 변호사 시절 로펌의 파트너 변호 사가 되기 위해 사다리를 오르는 동안, 가정과 아이들을 돌보는 것은 주로 내 몫이었다. 1970년대에 내가 ACLU의 여성 인권 사업을 시작했을 때 마티는 변화의 가능성에 열렬히 호응했고 나의 가장 든든한 지원자가 되었다. 그 후론 균형추가 반대로 옮겨갔다. 삶의 다른 시기에 서로를 보완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판사는 그날의 날씨가 아닌 시대의 기후를 고려해야 한다.” 법원은 사회의 변화에 맞춰 “반응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현실에 대한 고려 없이 문자 그대로 법전을 해석하면 안 된다는 “원전주의자” 긴즈버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역차별 주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종차별은 근절해야 할 문제라는 것, 여성 역시 남성처럼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능동적 주체라는 것,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동성인지 이성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 시대정신을 읽고 있기에 일관되게 추구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닐까 싶다.
“편향을 밝히는 게 중요하다. 나는 사람들을 세뇌하려고 애쓰지 않지만, 나 자신을 중립적인 사람으로 제시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생각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중립적이라는, 그래서 절대적으로 옳다는 믿음은 아집과 독선을 낳게 마련이다. 상대 의견을 무시한 채 대립으로만 치닫는 우리 사회가 귀담아들어야 할 메시지다. 긴즈버그는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늘 되돌아보고 (더불어 자신의 생각이 편향되었음을 인정하면서)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기 위해 (물론 상대의 생각도 편향되었음을 인정하면서) 노력한다. 올바른 동시에 단단한 의견을 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