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집에 갔을 때 가구 위치가 달라져 있으면 나는 엄마에게 작은 울적함이 지나간 흔적을 본다. 남편이 열심히 욕실에 락스를 뿌릴 때면 그에게 기분 전환이 필요한 순간임을 느낀다.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샤워할 때면 내 마음이 조금 우그러졌음을 알아챈다. 다른 이의 포물선에 무기력하게 올라탈 필요도, 불협화음에 당혹스러울 일도, 외로움에 서러울 것도 없다. 각자의 방식으로 천천히, 때로는 즐거운 마음으로 포물선 일치의 순간을 기다리면 되니까.
결국 ‘나에 대한 이해’의 문제였다. 내가 어떤 말에 발끈하고, 어떤 상황에 나사가 풀리는지. 날 못 견디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결혼하고 나서 확실히 알게 됐다. 내가 나를 이해하고 나니, 더는 남편에게 이해받고 싶어 안달 나지 않았다. 날 좀 이해해달라고 아우성치는 대신 마음의 근육을 키운다. 덕분에 나를 감당하는 일이 쉬워졌다. 더는 내가 못 견디는 일 앞에 무너지지 않는다. 우리의 다름이 언제고 ‘조율 가능한 일’, 혹은 ‘변화 가능한 일’로 분류될 것을 알기에. 나의 예민함이 곧 무뎌질 걸 알기에.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그저 우리라는 트랙을 신나게 달리면 되기에. 그렇게 무아지경 땀을 빼고 나면, 나를 감당하는 일을 한 뼘 더 쉬워질 걸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