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속에 든 스카치는 내게 안전을 보장해주었다. … 그것은 욕구가 지나치게 강렬해졌을 때도 나 자신을 돌볼 수단이 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나는 아버지의 그런 말들이 가감없는 사실의 진술인지, 그가 말함으로써 사실이 되어버린 암시인지도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그게 좋았다. 감정을 그렇게 다루는 사람들, 속마음을 줄줄 흘리면서 통찰이나 분석적 사고니 하는 것들을 비웃어주는 사람들 틈에 있는 게 좋았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웃을 수 있는 게 좋았다. 술집에서 그들과 나란히 앉아 똑같이 감정을 쏟아내면 해방된 도락의 경지에 이른 것 같았다. 나는 술을 마시고 그런 사람이 되는 게 좋았다. 뻔뻔하고 반항적이고 냉소적인 사람, 빈정대는 이야기로 친구들을 웃길 수 있는 사람, 그것은 내가 평생토록 찾아 헤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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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이 ‘딸각’하고 스위치를 올리자 익숙한 마법이 시작되었고, 나는 웃고 춤추고 섹스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 그러니까 술이라는 정신의 마취제 없이도 하루하루를 밀고 나가는 사람들은 외부의 힘에 막연한 기대를 하지 않으며, 개인의 진정한 힘과 희망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경험의 축적을 통해서, 즉 자기 앞에 닥친 과제들을 하나하나 해내는 과정을 통해서 얻어진다는 사실을 터득하고 있다.
하지만 술을 마시는 사람은 그러지 못한다. 고통스러운 감정을 뚫고 지나가는 것과 그것을 외면하는 것의 다른 점을 알지 못한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멍청히 앉아 술을 들이켜다가 취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