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s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찰스 부코스키 · 민음사 · 2019 · The Last Night of the Earth Poems: Hell is a Closed Door (1992)

구걸

결국 그들을 모두 용서하게 됐지만 도저히 나 자신은 용서가 되지 않았다. 소멸할 존재라는 자각은 가끔 사람을 이상하고 일터에 부적합한 인간으로 자유 기업의 노예이기를 거부하는 불쾌한 인간으로 만든다.


면도날 같은 낮, 쥐들이 들끓는 밤

내 삶은 술집과 도서관으로 양분돼 있었다. 그 외에는 일상을 어떻게 꾸려 갔는지 모르겠다. 그쪽으론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책이나 술이 있으면 다른 생각은 나지 않았다. 바보들은 자신의 파라다이스를 만드는 법이다.

…

달이 거기 없다고 주장한 사람은 기억이 난다. 하도 그럴싸해 그 책을 읽고 나니 달이 거기 없다는 그의 주장이 믿어졌다. 달이 거기 없다면 하루 여덟 시간의 노동을 감내할 청년이 누가 있겠나? 뭐가 아쉬워서?

그런데 문학보다 문학 평론가라는 자들이 더 좋았다. 참으로 밥맛 떨어지는 그자들은 세련된 언어를 동원해 아름다운 방식으로 다른 평론가와 작가를 등신 취급했고 나는 그 덕에 기운이 났다.


지옥은 닫힌 문이다.

작가만큼 서서히 힘겹게 죽어가는 것은 없다.


(같은 책인데 어떤 시에서는)


여보게, 공기와 빛과 시간과 공간은 창작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않아. 새로운 변명거리를 찾아낼 만큼 살날이 길다면 또 모르지만.

(하지만 다른 시에서는)


거리에서는 글을 쓸 수 없었다. 방 하나, 문 하나, 벽들을 갖추는 게 몹시 중요했다.


불씨

하급 노동자로 살 때는 단 한 순간도 분노가 가신 적 없었다. 늘 머리가 아프고 속이 쓰리고 어지럽고 미칠 것 같았다. 왜 내 삶을 스스로 도살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루하고 몰지각한 노동뿐 아니라 괴로운 기색 하나 없고 심지어 만족한 듯 보이는 많은 동료들 때문에 환장할 지경이었다.

노동자들은 굴복했다. 노동은 그들을 무용지물로 파괴했고 그들은 단물을 빨리고 내쳐졌다.

나는 매 순간 분노했다. 매 순간 내 시간은 도륙당했고 아무것도 단조로움을 달래 주지 않았다.

자살을 생각했다. 한 줌의 여가 시간을 술로 보냈다. 긴 세월 노동을 했다.

최악의 여자들과 같이 살았고 노동을 견디고 살아남은 것들은 그녀들 손에 죽어 갔다.

나는 죽어 가고 있었다. 내면의 무엇이 속삭였다. 저지르라고, 죽으라고, 그들처럼 되라고, 받아들이라고.

내면의 또다른 무엇이 속삭였다. 안 돼 가장 작은 조각을 살려 봐. 많이도 필요 없어, 그냥 불씨만 살려 둬. 불씨 하나가 숲 전체를 태울 수 있어. 그냥 불씨 하나만. 그걸 살려 둬.

해낸 것 같다. 다행히도. 참 우라지게 복도 많지.


그래도 나는 운이 좋다, 고독을 먹고 살면서 군중을 절대 그리워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위대한 책을 읽을 수 있지만 위대한 책은 내게 관심이 없다.